2009년 5월 1일 금요일

시선

얼마나 허영된 존재인가?

며칠전 명함이 나와서 총무님께 드리면서 추가로 장로님 및 그 밖에 몇몇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도 함께 돌렸었다.

첫째는 나의 허영. 나는 왜 특정한 사람 몇몇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특히 장로님...분명히 인격적으로는 훌륭하시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나는 차별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몇분이 갑자기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게되었을 때 근거없는 우쭐함은 왜 생기는 걸까? 겸손함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세속적인 의미로 판단내리지 않기 위해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기 위해 기대는 세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생각보다 배경이 괜찮구나하는 눈으로 볼때 겸손해지기가 너무 힘들다. 다니엘 전도사님이 구체적인 겸손을 가르쳐줬었는데 그래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마음이 흔들린다.

둘째는 그들의 허영. 색안경이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라고도 딱 꼬집을 수는 없다. 분명 보는 눈이 달라졌다. 총무님의 경우 '이거 좀 해주세요. 한가하시잖아요'->'취직했어요'->'명함주세요'->'책임이세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끝에 '요즘 시간이 있으니 제가 할께요.'로 슬픈 결말로 귀결되었다. 누구의 한가한 시간은 다른 누군가의 소유일까. 그리고 누구의 부족한 시간은 그 사람의 판단없이 다른이가 결정내려도 되는 것일까. 시간은 짜낼 수도 있는 것이고, 정말 그에게 시간이 없다면 거절하거나 미루거나 그럴 수 있는데 다른이가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부탁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다만 거절당할 경우 원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관대함이 크거나 작을 뿐이지 나의 소유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종교적 단련 영역은 아닐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운이 좋았다. 친구가 이 시기에 취직한 것만 해도 운이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고 했었다.
.....그러니 벗어버리자. 편견도. 우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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